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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아스널(Info­Arse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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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국회도서관>에 하도낙서 코너를 만들어 글을 쓰겠다고 자청했다. 앞으로 매달 독자들에게 마치 시리즈처럼 국회도서관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공직에 임하는 필자의 각오를 다질 수 있고, 나아가 국회도서관의 미션과 존재이유를 되돌아보며 국회 구성원을 비롯한 독자와 소통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지난해 연말에 국회도서관장에 임명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인사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덕담이었다. 취임 인사를 갔을 때 국회의원 한 분이 말하기를, 국회도서관에서 펴내는 금주의 서평에 나오는 책을 매주 한 권씩 읽는 것이 올해의 목표라고 했다. 그 책만 읽어도 1년에 50권이다.

필자는 이분의 각오를 듣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첫째다. 그 후 책을 사놓기는 하는데 벌써 작심삼일이 되었다. 정작 그동안 책 읽는 시간이 도리어 줄어들었다. 국회도서관이 책만 있는 그런 곳이 아니고 관장이 책만 읽는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둘째로, 국회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추천할 때도, 책 한 권을 구입할 때도 가장 먼저 이 책이 과연 국회의 입법·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최선두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사실 국회도서관장이라는 명칭만 보면 평생 법조인으로만 살아온 필자에게는 생소한 공직처럼 보인다. 1952년 개관 이래 법조인이 맡은 것은 처음이다. 과거에 도서관 전문가가 국회도서관장을 맡아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필자가 보기에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전에 어느 정치권 인사가 국회도서관장에 임명되었을 때 도서관 전문가가 아니라고 비판하자 그는 나는 도서 출신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는 그나마 도서(島嶼) 출신이었지만 필자는 내륙 출신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국회도서관은 오로지 도서관서비스(국회도서관법 131·도서관법 33)만 하는 다른 도서관과는 그 역할이 다른 의회도서관이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서가 많이 근무하지만 우리 사서들은 단순한 도서사서가 아니라 의회사서이다.

도서관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마치 홍문관 대제학 같은 이미지 때문에 명예스러운 공직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필자는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국회의 입법·의정활동과 직결된다고 생각하기에 책만 읽고 있을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취임하자 국회도서관법 조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률가는 해답을 법에서 찾는다. 국회도서관은 국회법과 국회도서관법이 근거 법률이다. 법조문에 이미 답이 들어 있었다.

국회법 제22조는 국회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도서 및 입법자료에 관한 업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국회도서관법 제2조는 국회의 입법활동을 지원’(1), ‘입법지원기관’(1항 제6), ‘의정활동 지원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무’(1항 제7)라고 하고 있다. 요약하면 국회도서관은 국회정보지원기관이다. 국회도서관은 국회의 입법·의정활동을 지원하는 국회도서관법 제2조 제1항 각 호의 국회 내부 정보지원서비스가 제1차 본령이고, 국회도서관법 제2조 제2항의 도서관은 국회 이외의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단체, 교육·연구기관과 공중에 대하여 도서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1993년부터 개방하고 있는 대국민 도서관서비스는 사실은 부차적이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를 보면 국회도서관의 미션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세계의 지식정보를 수집하여 국회와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인류의 지적 문화 유산을 보존하여 후세에게 전승한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법은 제1조 앞에 국립국회도서관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확신에 서서 헌법이 서약하는 일본의 민주화와 세계평화에 기여함을 사명으로 여기에 설립된다.”라는 보다 거창한 전문(前文)을 두고 있다.

국회도서관은 국회 내에서 도서관서비스와 정보서비스를 통해 국회의원과 그 보좌진 및 국회구성원에게 정보지원을 함으로써 국회의 입법·의정활동을 지원한다. 국회도서관법 제2조 제1항은 도서관자료의 수집·정리·보존, 도서관서비스의 제공’(1)의회 및 법률 정보의 조사·회답·제공’(2)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도서관은 먼저 도서관자료의 수집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정보를 모아두어야 한다. 여기서 도서관자료란 인쇄자료, 필사자료, 시청각자료, 마이크로형태자료, 전자자료, 그 밖에 장애인을 위한 특수자료 등 지식정보자원 전달을 목적으로 정보가 축적된 모든 자료(온라인자료 포함)로서 도서관이 수집·정리·보존하는 자료를 말한다(국회도서관법 131·도서관법 32). 수집한 자료 속에서 중요 정보를 찾아서 책자로 발간하거나 메일링 서비스를 한다. 홈페이지, 의회법률정보포털, 국가전략정보포털, 지방의회의정포털 등에 올려놓는 등 국회전자도서관의 구축·운영’(213)을 한다.

국회도서관은 도서관자료의 수집·정리·보존, 도서관서비스의 제공’(1)을 할 때도 국회정보지원기관의 특수성에 촛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 규모를 비교하는 사람도 있으나, 필자는 늘 국회도서관은 도서관자료의 수집 목적이 여느 도서관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세상의 모든 도서관자료를 수집할 수 없는 바에야, 한정된 예산 하에서 가급적이면 국회의 입법·예산·국정감사 등 의정활동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국내에서 발간된 도서, 보고서, 논문 등은 납본제도와 상호협력협약을 통해 대부분 수집할 수 있으나, 문제는 외국 자료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와 무관한 책은 사실 굳이 구입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매주 금주의 신간’ 18권을 선정하여 3쪽으로 요약하여 소개하는데, 상임위를 분류할 수 없는 책은 굳이 소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얼마 전에 싱가포르 국회의장이 방한했을 때 대한민국­싱가포르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싱가포르의 정치·경제·사회 등 싱가포르 성공의 역사에 관한 책 50권을 국회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주한싱가포르대사관에서 50권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도서기증식을 마치고 열람실을 참관하면서 열람봉사과장이 국회도서관 장서가 870만권이라고 하자 시아 키앤 펭 의장은 “87050권이죠.”라고 조크를 했다. 그런데 웃을 수만 없는 것이, 50책의 목록을 가지고 찾아보니 국회도서관에 소장된 책은 그중 13책뿐이다. 37책은 국회도서관에 없다는 말이다. 외국도서 선정 자문위원단에 국가별 지역전문가도 보충하여 재구성하고 주한 외국공관과의 협력도 강화하려고 한다.

국회도서관은 1차적으로 국회의원, 그 보좌진, 국회사무처, 국회예산정책처 및 국회입법조사처에 대한 정보지원기관이다. 국회의원회관 300실에서 근무하는 보좌관과 비서관 9인이 전속 보좌진이라면 국회도서관은 일종의 공동 보좌진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전자도서관의 구축·운영(3), 국회 의정활동 관련 기록물의 수집·정리·보존·평가·활용(4), 입법활동에 관한 국가 서지의 작성 및 표준화(5), 국내외 입법지원기관·다른 도서관 등과의 교류·협력(6)도 모두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업무다. 국회도서관은 그 밖에 의정활동 지원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무’(7)를 광범위하게 수행하고 있다.

국회도서관법 제2조 제1항 제2호의 의회 및 법률 정보의 조사·회답·제공은 국회도서관 특유의 정보회답 및 정보제공 서비스이다. 국회도서관의 실·국 중 의회정보실과 법률정보실에서 이 업무를 수행한다. 의회정보회답과 법률정보회답이 국회구성원의 정보조사요구에 대해 정보를 조사하여 회신하는 수동적 서비스라면, 의회정보제공과 법률정보제공은 입법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선제적으로 찾아내 가공하여 발간물과 메일링 등으로 국회구성원들에게 적시에 제공하는 능동적 서비스다. 개개 의원실의 보좌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전자보다 후자가 중요할 수 있다. 전자는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로서 그 전문성, 신속성, 정확성 및 신뢰성을 유지하면 되지만, 후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국회도서관 구성원들이 선진외국의 정책 및 입법 동향과 국가전략 및 국정의 주요 이슈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 주요 국가별, 국정과제별 전담사서 제도를 도입할 만하다. 연간 6천여 건에 달하는 정보회답에 대한 의원실 만족도를 조사해보면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정보회답과 정보제공이 입법·의정활동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고 기여하였는지 정성적 평가를 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필자가 국회도서관의 정보회답에 대해 말하면 같은 건물에 있는 국회입법조사처와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2007입법·정책과 관련한 조사·분석·연구·정보제공업무를 보다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국회입법조사처가 설치되면서 입법조사회답 서비스가 국회도서관 직무에서 분리되었다. 현재 국회도서관은 의회사서와 자료조사관이 협력하여 국내외의 정책·제도·입법례·통계 등 사실정보를 조사하여 제공하는 일을 하고, 사실정보를 기초로 변호사 등 입법조사관이 조사·분석·평가·연구를 하고 입법과 정책의 대안을 강구하는 일은 입법조사처가 한다. 법적으로는 입법조사처가 입법·정책 조사를 수행하면서 필요한 사실정보를 요구하면 국회도서관이 정보회답을 하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된다. 법조계의 용어로 비교하면 정보회답이 사실조회나 증인이라면 입법조사회답은 감정이나 감정증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의원실에서 입법조사처에 입법·정책에 관한 조사·분석을 요구하였을 때, 입법조사처가 그 전제인 외국 입법례와 같은 사실정보 조사를 국회도서관에 요구할 수도 있지만, 입법조사처에서 스스로 사실정보 조사까지 할 수 있는 경우에는 국회도서관에 굳이 정보조사를 요구하지 않고 직접 할 수도 있다. 국회도서관과 입법조사처의 업무 한계가 일도양단으로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의원실에서 국회도서관과 입법조사처에 두 곳에 동시에 정보조사요구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미국과 일본은 현재도 사실정보회답 서비스와 입법조사회답 서비스를 국회도서관에서 함께 수행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통합형과 분리형 중 어느 제도가 좋을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나아가 미국 국회도서관은 정보조사회답 서비스를 국회 내부만이 아니라 국가기관, 공공기관, 연구자 및 일반 국민을 상대로도 제공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구축한 방대한 지식정보를 국민에게도 제공하는 일은 우리도 언젠가는 도입할 만하다.

국회도서관은 국회의 정보지원기관으로서 민주주의의 무기고(Arsenal of Democracy)이다. 대한민국과 우리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싸우는 즐거운 전사들 300인에게 쓸모 있는 지식과 정보의 보고(寶庫)로서 인포­아스날’(Info­Arsenal)이 되고자 한다. 국회도서관장은 그 무기고를 관리하는 불침번이다. (월간 국회도서관 202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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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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